일흔에 다시 잡은 붓, 나를 위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꾸리며 앞만 보고 살아온 시간이 길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늘 “나중에”라고 미뤄야 했던 김정희 씨에게 그림은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작은 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종이에 꽃과 사람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을 그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일흔이 넘어 우연히 한인 시니어 미술수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이 나이에 처음 시작해도 될까 싶었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잘 그릴 것 같고, 나만 아무것도 모르면 창피할 것 같았지요.”
처음 수업에 참여한 날, 김정희 씨는 연필과 붓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자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잘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배우며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긴장도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첫 작품은 작은 꽃 한 송이였습니다. 모양도 색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그리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처음 완성한 그림을 버리지 말고 날짜를 적어두라고 했습니다.
“처음 그린 그림도 내 시간이고 내 기록이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한 시간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일주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수업 전날에는 붓과 물감을 챙기고, 다음에는 무엇을 그릴지 생각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나무와 하늘의 색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마트에서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두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비슷하게 지나갔어요. 그런데 그림을 시작한 뒤에는 주변을 더 자세히 보게 됐어요. 평범했던 것들이 그림의 소재가 되니까 일상이 조금 달라 보였지요.”
완성한 작품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응원했고, 손주들은 할머니가 그린 그림을 자기 방에 걸어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것
김정희 씨는 아직 자신을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을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작품과 비교하며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잘 그리는 것보다 계속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았잖아요. 이제는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써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거창한 성공이나 새로운 직업을 위한 도전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아직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 인생에서 새로 시작한 것
김정희 씨에게 두 번째 인생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관심과 꿈을 다시 꺼내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꽃 한 송이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언젠가 자신이 그린 풍경화를 전시해 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늦었다는 생각보다 왜 조금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지금 시작했으니 됐지요.”
새로운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습니다. 작은 관심 하나를 다시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두 번째 인생에도 새로운 시간이 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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